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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옛 정원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담양 소쇄원(瀟灑園)
소쇄원은 우리 정원의 아름다움은 물론 숲에 대한 선조들의 생각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소쇄원도’에는 철쭉이나 살구, 산수유, 석류, 창포, 대나무, 매화, 파초, 회화나무, 소나무 등 스무가지 정도의 꽃과 나무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선비들은 나무 한그루, 꽃 한송이를 심을 때에도 각별한 의미를 두었다고 한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 양산보가 세운 별서정원이다. 양산보는 개혁정치를 펼치던 조광조의 제자였으나 스승이 기묘사화 때 화순 능주로 유배돼 사약을 받고 죽자 담양에 소쇄원을 지었다고 한다. 별서정원이란 살림집이 딸린 별장이란 뜻이다. 양산보는 소쇄원을 절대로 팔지 못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또 함부로 손을 대서 바꾸지도 말며 어리석은 후손에겐 물려주지도 말라고 했다. 후손들이 500년 가까이 그의 유지를 받든 까닭에 아직도 원형의 모습이 남아있다.
들머리는 대숲이 울창하다. 햇살이 비치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선 대숲. 죽제품 시장만 해도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담양은 당시에도 이름난 대나무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담양군에 조성된 대숲만 1백60만평. 전국 죽제품의 4분의 1이 담양에서 나온다고 한다. 대나무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시경(詩經)에는 ‘기수 저 너머를 보라 푸른 대나무 청초하고 무성하구나. 고아한 군자가 바로 거기 있도다’ 라고 쓰여있다. 위나라와 진나라 때의 죽림칠현처럼 은둔하는 선비들을 암시하기도 한다. 소쇄원 대숲은 그래서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에 눌러앉은 양산보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대숲길을 넘어서면 대봉대와 애양단, 오곡문으로 이어진다. 이엉을 얹은 대봉대는 소쇄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손님들이 일단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던 곳이다.
애양단은 볕이 바른 동쪽의 담장인데, 양산보는 이곳에 국화를 심었다. 김인후가 남긴 ‘ 瀟灑園四十八詠 ’중 늦가을의 정취와 잘 어울리는 황국이란 대목이 나오는데 당시에 국화가 있었던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지금은 국화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양산보는 도연명을 좋아했는데 도연명이 국화를 가까이 했기 때문에 그 역시 국화를 심었을 것이란 추측을 해볼 수도 있다.
오곡문은 계곡에 쌓은 담장. 물을 막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자연석만 괴어 담장을 쌓았다. 오곡문을 지나면 꽃계단이 나타난다. 원래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던 자리다. 매화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이다. 정쟁을 떠나 고고한 학처럼 사는 양산보 자신을 국화에 비유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습한 곳에서 자라는 난초를 제외하고 사군자를 모두 심어 놓은 셈이다.
외나무 다리를 지나면 광풍각과 제월당이 나타난다. 광풍각은 손님을 맞는 사랑방이고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는 집이다. 제월당 주변에는 회화나무와 산수유, 옆에는 편백나무와 석류 등이 자란다. 나무의 수령으로 보아 후대에 심어진 것으로 여겨지지만 아무 나무나 함부로 심은 것은 아니다. 회화나무는 원래 선비나무이다.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한다고 해서 학자나무로 알려져있으며 상서롭다 해서 길상목(吉祥木)으로 불렸다. 산수유는 가문의 번성을 뜻한다. 2월부터 4월까지 피어나는 샛노란 꽃은 겨울을 깨고 봄을 알린다. 산수유는 꽃처럼 자손이 번창하고 화목하란 의미를 담고 있다. 철쭉은 꽃의 크기가 다른 꽃보다 크고 화려하다. 그래서 풍요로움을 나타낸다. 알갱이가 단단히 붙어있는 석류는 집안의 결속을 의미한다. 그러고보면 소쇄원의 나무 한그루, 꽃 한송이에도 양산보의 생각과 철학이 담겨있다. 깨끗하며 시원하다는 뜻의 소쇄원. 인간과 나무, 숲의 조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 건축도시연구소 家人 '한국의 정원 소쇄원' 중에서 / 사진 朱木 김봉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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