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고개의 추억
우리 자랄때는 배고픔도 많았지.
일년 중 제일 배고플 때가 딱 지금철 즉 보리고개가 나올 때.
작년 가을 곡식은 벌써 바닥 났는데
햇 보리가 나올려면 아직도 한달이상 기다려야 되니
마음 마저 배고픈 듯 하여
오죽하면 보리고개가 배고픈 시절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우리 같은 악동들은 보리서리할 때를 손꼽아 기다리고....
보리 알갱이에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꼿꼿이 세운 보리고개가 불그스름하게 익어갈 즈음
모가지 톡톡 꺾어다가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논둑 아래에다 마른 솔가지에 불피워
모가지체 그슬리듯 구어서
새카맣게 그을린 보리고개 양 손바닥 사이에 올려 놓고
뜨거움을 호호 불어 식혀가며
주둥이 볼따구에 숯껌정 까맣게 묻혀가며
오물오물 씹어먹던 그 연하고 고소한 보리알갱이의 맛
지금도 아련하네.
남녘여행길
보리고개 나오기 시작하는 파란 보리밭을 보면서
금년 보리서리 철에는 불그스름한 보리 모가지를 사다가
마누라 딸아들 모아놓고
불에 그슬린 보리 손바닥에 비벼 먹으며
아스라한 옛얘기 들려 주어야지 생각했는데
글쎄? 식구들이 내 속 마음을 알아줄려는지!
200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