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 긴 겨울의 끝자락, 멀리 남녘에서 꽃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야생화 사진담기를 취미생활로 하는 일명 꽃쟁이들은 온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기다리노라면 북진하는 꽃바람타고 수도권 인근의 산야에서도 가랑잎 덤불을 헤치며 방긋웃는 가녀리고 화사한 녀석들을 만날 수 있을터인데도 무에 그리 급한지 그들은 카매라 울러매고 야생화 찾아 먼 길을 떠나고는 한다.
나도 3월 11일 아침 6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포항 모처에 들러 깜찍할 정도로 앙징맞은 노루귀의 모습을 담은 뒤 경주의 야산에서 변산바람꽃의 은은한 꽃향기를 흠뻑 마시고 돌아 온 다음 날 아침 8시 영흥도 선착장에서 꽃섬행 낚싯배에 몸을 실었다.
꽃섬은 자그마한 섬의 야산 전체가 이른 봄 들꽃으로 뒤덮혀 지도상에는 어엿한 행정구역 이름이 있음에도 꽃쟁이들에게는 꽃섬으로 불리운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한파의 영향으로 야생화의 발화상태가 예년보다 좀 늦은 듯 했어도 각처에서 몰려든 꽃쟁이들에 뒤섞여
낮으막한 산을 오르락 내리락 천지삐까리로 피어있는 들꽃향기에 꽃멀미가 날 지경, 모두들 싱글 벙글 웃음꽃이 핀다.
꽃섬탐사를 마치고 영흥도 선착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나선 김에 벼르고 별렀던 거문도 수선화 탐사까지 겸하기로 작정했었기에 장 장 6시간의 밤길을 달려 밤 12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전남 고흥의 녹동항에 도착했다.
원래 여행을 할 때는 잘 먹고 잘 자야만 체력을 유지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는 법인데 이 야생화 탐사 여행은 워낙 시간에 쫓기고 산골짜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먹거리가 부실한 게 흠이다.
아침에 배안에서 김밥, 점심은 산속에서 김밥,저녁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순두부찌게,이런 식의 식단으로 하루를 보내자니 싸구려 모텔 객방에 몸을 눕혔을 때는 뱃속이 허전할 수 밖에.
허나 아침 8시 거문도행 패리호를 타야하니 주린 배 보다 휴식이 더 중요하다 여겨져 그냥 잠을 청한다.
그리스 신화에 자기도취에 빠져 죽은 넋빠진 넘 이야기가 있다.
숲속 샘물에 비추이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서 식음을 잊고 샘물만 들여다 보다 죽은 나르씨서스(Narcissus)의 이야기다. 나르씨즘(자기도취)은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가 죽은 곳에서 피어난 꽃이 수선화라 하니 과연 그 꽃은 얼마나 곱게 생겼을까.
중국에서는 수선화를 금잔옥대(金盞玉臺)라 불렀다.
하얀 꽃받침 위에 핀 노란 꽃을 옥쟁반에 올려놓은 황금술잔으로 비유한 말이다.역시 중국사람들의 뻥은 알아줄만 하다.
수선화는 원산지가 남유럽 또는 북아프리카인 식물로 우리나라에 귀화되어 제주도 거문도등 남쪽 섬지방에 자생한다.
생김새가 수려하여 원예종으로 개량되어 전 세계에 걸쳐 200여 종이 넘는다 한다.
거문도 선착장에서 빨간 꽃 주렁 주렁 열린 동백나무 숲길을 약 4km 걸어 등대가 있는 곳 해안가 바위벼랑에 노란꽃을 피운 수선화가 남쪽 섬의 따사한 봄바람을 맞아 살랑거리고 있었다.
고소공포증을 무릅쓰고 겨우 겨우 기다시피 내려가 가까이에서 그 아이들을 들여다본 순간 수선화에 대해 쓰여진 갖가지 미사여구들이 모두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든다.
화단에 길려진 몇 송이의 원예종을 봤을 때와는 느낌이 영 달라 먼 길을 오며 쌓인 피로가 싹 가시는 듯.
긴 겨울 동안 굶주렸던 꽃기운을 이번 출사여행 3일 동안에 원없이 받았으니 당분간은 꽃바람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점차 무르익어가는 봄기운에 언제 어디서 어떤 꽃바람이 쓰나미되어 불어닥칠런지는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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