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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석/김낙호 2011.07.28 14:34 조회 수 : 3305 추천:3

흔히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꺼리는 싸움구경 불구경 물구경 이라 말한다.
그것도 물론 공짜일 때.
간밤에 쉼없이 쏟아지던 빗소리가 생각나기에
"여보, 잼있는 구경가자."
" 뭐, CGV에서 좋은 영화라도 상영하는 모양이지?"
" 물구경하러 탄천이나 한 바퀴 돌자구.운동도 할 겸"
탐탁치 않아 하는 마눌님 모시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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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단지 옆 중앙공원을 돌아흐르는 분당천을 따라 약 30분만 걸으면 탄천과 합류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분당천만 해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새차게 넘쳐흐르는 황토색 흙탕물이 섬찟함을 느끼게 한다.
천변 자전거도로도 군데 군데 물에 잠겨 선뜻 내려서기가 껄쩍찌근 하다.
허지만 이왕 나선 것, 기껏해야 발목까지만 빠지면 되는 자전거도로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첫번째 이재민 발견, 새끼 다섯 마리를 거느린 어미 오리.
약간은 높은 지대라서 물이 넘쳐흐르지는 않고 남실대는 풀섶에 옹기종기 쭈그려 앉아 오돌오돌 떠는 새끼오리를
돌보느라 안절부절하는 어미오리가 안쓰럽다.
119에 연락해서 저 오리들을 구출하자며 호들갑을 떠는 마눌님 목소리가 더 위험하다 여겼는지 어미오리가 빠르게
흐르는 물속으로 뛰어들자 새끼들도 어미따라 물속으로 뛰어들어 황급히 물갈퀴질을 하며 피난처를 옮긴다.

 

두번째 이재민들 발견, 물이 넘쳐흐르다 빠진 자전거도로 위에 미쳐 물따라 빠져나가지 못한 송사리류의 작은
물고기들과 미꾸라지 그리고 가재.
이 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잡아 흐르는 물속으로 던져 주었다.
다만 손가락 사이로 쏙쏙 빠져 달아나는 미꾸라지란 놈들은 어떻게 구조할 방법이 없다.
"짜식들 진심을 몰라주다니..... 그래 끈질긴 녀석들이니 니들 재주껏 살아가거라."
***보살이라는 법명을 가진 불자(佛子) 마눌님이 안타까워 하지만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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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이재민 발견.
"어머 머머, 저 것 좀 봐욧!!"
분당천과 탄천이 만나는 합수머리에는 양 천에서 쏟아져내리는 물들이 부딪치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지금보다 더 많운 물이 소용돌이치다가 물이 줄어들때 물쌀을 따라가지 못한 붕어들이 자전거도로 위에서 팔딱
거리고 있었다.
물울 떠난 맨 땅에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비늘이 벗겨지며 핏자국이 난 녀석들도 있다.
급한 마음에 하나 하나 잡아 물속으로 던져넣으려 하나 워낙 큰 아이들이라 두 손으로 잡아도 힘에 겹다.
월척, 준척들이라 만일 강태공들이 봤더라면 입이 함지박만 해졌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붕어찜 생각도 스친다.
'아니지,정식으로 겨뤄 잡은 아이들도 아닌 이재민을 두고 이런 생각을.... 천벌을 받으려고!'
한 마리 한 마리 조심스럽게 구조작업을 벌리는데
"지금 뭐 하고 있어요?"
바케츠를 든 중년남자가 맞은편에서 오며 말을 건다.
"보시다시피 이재민 구조작업 중 입니다"
아무말 없이 이상한 사람 보겠다는 표정으로 지나치는 그 사람의 바케쓰에는 월척붕어가 잔뜩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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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내가 한 발 늦었구나 .미안하다 붕어들아.'
양심이 뭔지 그래도 내 주변에 있던 이재민 서 너 마리에는 손을 대지 않고 그냥 지나갔으니 다행이다.
아마 바케쓰를 든 남자도 똑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아차, 내가 한 발 늦었구나, 라고.

                                                                                              

                                                                                                                                                                               2011.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