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을까? 괜한 짓 하는 건 아닐까?'
매서운 겨울바람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 뻐쓰정류장까지 걸으면서도 못내 불안한 심정이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날씨가 더 추워지는게 당연하지 않나?
왜 메스컴에서는 내일이 올 겨울중 가장 추운 날씨 운운하며 어렵사리 결심하여 떠나는 무박이일 사진여행길을 더욱 걱정스럽게 만드
는지 모르겠다.
충무로에서 밤 11시에 떠나는 풍경사진여행뻐쓰를 타려면 11시 30분까지 죽전 간이뻐쓰정류장까지 가면 된다.
벌써 와 있는 삼각대를 장착한 베낭을 멘 진사님들 서 너명과 수인사를 하고 이어 도착한 45인승 대형뻐쓰에 올랐다.
빈 좌석 하나 없이 꽉 찬 대형뻐쓰가 대관령부근을 지날 무렵에는 난방을 키고 달리는 차내에서도 아랫도리가 시린걸로 봐서 바깥날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옷을 덜 입고 오셨나 봅니다.바닷바람은 워낙 거세니 방한복을 단단히 챙겨 입어여 돼요"
나처럼 나홀로 족인 옆좌석에 앉은 분이 얘기를 걸어 오신다.
"전 1997년에 정년퇴직한 전직 교장선생입니다.2년전에 암으로 위를 다 잘라낸 후 사진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지요.문화쎈타에서 1년 공부
하고 5개월만에 공모전 사진작가협회 입회점수를 다 채운 후 풍경사진 공부 좀 하려구요"
1997년에 정년을 하셨다면 어림짐작으로 연세가 80언저리 일 것 같고 더군다나 위암수술까지 하신 분이 엄동에 무박2일 나홀로 탐사에 나
서는데 겨우 이제 지공선사가 된 처지에 몇 시간 전 집에서 망설였던 일이 좀 창피하다.
원단에는 혼자서 기차를 타고 정동진도 다녀 왔단다.
새벽 3시 10분 마이크 소리에 비몽사몽 잠에서 깼다.
"목적지 해신당에 도착했습니다.아침식사를 할 식당에 미리 부탁해두었으니 식당에 가서 적당히 눈 좀 부치치셨다가 6시 30분에 뻐쓰에
타주시기 바랍니다."
냉기가 그대로인 식당 방에서 깔고 덮을 것 하나 없이 세우잠을 자는둥 마는둥 시간을 보내는 일이 무박2일 사진여행에서 가장 힘든 시간
이다.
침낭을 휴대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6시 30분 ,어두컴컴한 길을 더듬어 해신당공원 해변으로 이동, 불그스레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저마다 일출사진 촬영 포인트를
찾느라 어수선 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지만 저 멀리 수평선 부근엔 까만 까스구름이 두껍게 덮혀있어 오늘도 오마담을 만나기는 글렀다.
하지만 오마담이 반기지 않는다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오메가 사진만 일출사진은 아니지 않은가!
비오고 눈오는 날의 사진이 더 멋있고 운치있어 보이기도 하듯이 그 날의 환경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애쓰며
고심해보는 것이 사진을 공부하는 자세가 아닐런지.
나름 아는 지식과 상식을 동원, 프레임을 구성하고 적정노출을 찾아내느라 추위를 느낄 겨를도 없이 시간이 흐른다.
이윽고 아침시간대 출사가 끝나고 자그마한 식당에서 더운 밥에 소주 한 잔으로 언 몸을 녹인다.
처음으로 밝은 시간대에 일행들을 둘러보게 되고 이런 저런 얘기도 주고 받는다.
놀라운 것은 이제 겨우 지공선사 대열에 합류한 처지로는 나이순서 서열로 참가자 45명 중 30위에 들까 말까 할 정도로 남녀 모두 세상
젊게 사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비록 익숙치 않은 무박2일 여행이라 춥고 힘들었지만 젊게 사는 사람들의 일원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밤 11시 30분 죽전 출발 다음 날 오후 6시 30분 죽전 도착,삼겹살에 소주 한 잔 값으로 젊음을 얻은 느낌이다.
세상살이 시간이 지루하고 기분이 쳐진다 싶을 때는 어쩌면 무박2일 출사가 비전의 처방약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임진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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