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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지 2012.11.05 10:09 조회 수 : 2314 추천:4

 

[아침 편지] 수능날에… 아들 어깨 한번 툭 쳐주리라

 

 

 

한숙희.jpg


오는 8일 아들이 드디어 수능시험을 치른다. 방송에서 수험생 부모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기에 귀를 쫑긋했더니, 첫째가 잔소리, 그다음이 지나친 격려나 기대의 말이란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말은 기숙사 귀가의 날, 아들은 이틀 동안 도무지 수험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태평스럽게 늦잠에다, 만화영화를 보고, 누나의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했다. 그런 아들을 탓할 수 없었던 것은 지난 3년 얼마나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 왔는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아들과 나, 우리 가족은 지금 담담하게 수능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3년여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참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 시간이 물처럼 흐르는 동안 앳된 소년이었던 아들에게선 어느덧 헌칠한 청년의 모습이 보이고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부쩍 늙어버린 듯하다.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지금은 금물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지난 3년을 정말 열심히 살아냈다는 것이다. 아들은 사교육 한 번 받지 않고 교복 바지의 엉덩이가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공부를 했고, 나는 악명 높은 배후령 고갯길이 눈을 감아도 훤하도록 뻔질나게 기숙사를 드나들었으며, 남편은 가게 수입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두 아이의 교육비를 위해 지금도 틈틈이 폐지를 모아 팔고 야간 알바도 하고 있다. 우리 가족 모두 정말 열심히, 촘촘하게, 꽉꽉 채워서 살아낸 시간들이었다.

처음 낯선 도시의 학교로 진학했을 때, 우수한 친구들 틈에서 좀처럼 오르지 않던 성적, 외로움·향수·교우관계 등등 3년 내내 아들을 짓눌렀을 모든 힘든 과정을 묵묵히 이겨낸 아들이 그저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부모가 있는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몸도 마음도 편했을 테지만 굳이 도시의 비평준화 고교에 진학해서 고생은 고생대로 했으면서도 내신이 썩 잘 나오지 않은 탓에 아등바등 수능에 매달려서 정시를 바라봐야 하지만 아들도 나도 후회는 않는다. 뭐라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난 3년간 우리는 분명 성장했고 또 견고해졌다.

수능 당일 유난을 떨고 싶지는 않지만 일찍 일어나 약간의 간식거리를 준비해 딸내미와 함께 아들을 응원할 생각이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아들은 스스로의 길을 갈 것이고 이번 수능은 그 길에서 만나는 하나의 관문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식이 가는 길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을 알고 있는 엄마이기에 평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처럼 아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가볍게 한마디 던질 것이다. "아들, 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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