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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2012.11.07 11:16 조회 수 : 2619 추천:2

이 내용을 아시고 계시는 분들이 얼마나 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친구넘이 아침에 보내준 가슴 아픈 이야기...
김기덕이 진행하는 모 방송프로그램에 나왔던 실제 이야기라고 하네요.
읽다 보니 맘 아퍼서 눈물이 ㅠ.ㅠ ,

 하여간 인간(사람) 관계는 있을 때 자~알 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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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 설문조사에서 복권 당첨되면, 무엇부터 바꾸고 싶은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대다수 남자들이 '아내'라고 대답했다 한다.
 많은 여자들 또한, ‘남편’이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 방 걸레질 하는 소리.......
여 : 아! 발 좀 치워봐.

(지금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 걸레질을 하는 그녀, 아내...
 그 모습 보면서, 나도 만약 그런 질문 받는다면, 나 역시 아내라고 답할 것 같다는 생각 한다.)

여 : 점심은 비빔밥 대강 해먹을라 그러는데, 괜찮지?
남 : 또 양푼에 비벼먹자고?

여 : 어,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집안 청소 다 했더니, 힘들어 죽겠어.
남 : 나 점심 약속 있어.

여 : 그런 얘기 없었잖아.
남 : .... 있었어. 깜박하고 말 안 한거야. 중식이... 중식이 만나기로 했잖아.
여 : ...그래? 할 수 없지 뭐.

(해외출장 가있는 친구 중식이를 팔아놓고, 중식이 한테도 아내에게도 약간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한가로운 일요일, 난 아내와 집에서 이렇게라도 탈출하고 싶었다.)

(나름대로 근사하게 차려 입고 나가려는데, 커다란 양푼에 밥을 비벼 서,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펑퍼짐한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폼새다.)

여 :(우물거리며) 언제 들어 올거야?
남 : 몰라... 저녁도 먹고 들어올지...

여 : 나 혼자 심심하잖아. 빨리 들어와.
남 : 애들한테 전화해 보든가....
여 : (물 한잔 마시고) 애들 뭐... 내가 전화하면 받아주기나 해?
      엄마 나 바쁘니까 끊어. 이 소리 하기 바쁘지.

남 : 친구들 만나든가 그럼!
여 : 내가 일요일 날 만날 친구가 어딨어?

* 밥 긁어서 먹는 소리.....

(그렇다. 아내에게는 일요일에 만날 친구 하나 없다.
 아이들 키우고 내 뒷바라지 하느라 그렇게 됐다는게, 아내의 해묵은 레퍼토리다.
 그 얘기 나오기 전에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한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 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 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 데.......)

여 : (아픈 듯) 어디 갔다 이제 와?
남 :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여 :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혔나봐.
      약 좀 사오라고 그렇게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남 :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여 : 손이라도 좀 따줘.

남 : 그러게... 그렇게 먹어대더라니... 좀 천천히 못 먹냐?
여 : 버릇이 돼서 그렇지 뭐...맨날 집안일 하다 보면, 그냥 대강 빨리 먹고 치우고...
      이랬던 게...

(어깨에서 손으로 피를 몰아 손끝을 바늘로 땄다. 아내 어깨가 어느새 많이 말라 있었다.)

(다음날, 회식이 있어, 또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런데 아내가 또 소파에서 웅크린 자세로 엎드려 있다.)

남 : 여보... 들어가서 자.
여 : 여보... 나 배가 또 안 좋으네.

남 : 체한 게 아직 안 내려갔나?
여 : 그런가봐. 소화제 먹었는데도 계속 그래.

남 : 손 이리 내봐. (아내의 손끝은 상처 투성이였다.)
남 :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여 : 어. 너무 답답해서...
남 : (버럭)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 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
 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 응급실 소음 소리.......

여 : (속삭) 여보. 병원 오니까, 괜찮은 거 있지.
남 : 가만 있어봐. 검사 받아야 되니까.

여 : 아니... 진짜 말짱해. 아까 잠깐 그렇게 아팠나봐.
남 : 온 김에 검사 받고 가.

여 : 뭐하러 그래~ 응급실 얼마나 비싼데~ 내일 병원 문 열면, 가서 검사 받을게.
남 :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여 : 가자니까. 완전 바가지야.

(잡을 틈도 없이, 아내는 먼저 일어나 나간다. 나도 머쓱하게 아내를 따라 나온다.
 하긴 아내의 말처럼 응급실은 보통 진료비보다 훨씬 비싸다.)

* 거리 소음 + 걷는 소리.......

남 : 진짜 괜찮아?
여 : 응. 나 학교 다닐 때도, 시험 보기 전날이면, 배 아프고 그랬다? 그런데 병원만 딱 오면,
      배가 안 아픈 거야. 그게 다 신경성이라 그런가 봐.

남 : 그러게, 사람 놀래키고 그래~~ 아프면 바로 바로 병원 가고 그래.
여 : 어머~ 당신 놀랬어? 어유~ 그래도 홀아비 되긴 싫었나 봐?

남 : 싫긴 뭐가 싫으냐? 홀아비 되면, 젊은 마누라도 새로 들이고 좋지.
여 : 내가 말을 말아야지...

* 걷는 소리.......

(참 오래 전부터 내 곁에서 이렇게 함께 걸어왔던 아내.
 그녀와 아주 오랜만에... 함께 길을 걸어본다.)

(다음날 병원에 다녀온 아내는, 회사 앞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여 : 난데, 우리 점심 먹을까?
남 : 바쁜데...

여 : 회사 앞까지 왔는데?
남 : 그래. 알았다. 병원은 갔다 왔어?

여 : 어. 신경성 위염이래. 남편이 속 썩이냐고 물어보더라. 의사선생님이.......
남 : 나만큼 잘하는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뭐 먹고 싶어?
여 : 죽 먹자. 요즘 좋은 죽집 많다며? 그런 데 가서 우아하게 먹어보고 싶다.

* 죽 떠먹는 소리.......

남 : 여기 괜찮지?
여 : 횟집에서 죽도 파네?

남 : 어. 우리 회식할 때 자주 오는 데야.
여 : 그런데 너무 비싸다. 죽 한 그릇에 만 오천 원씩이나 해?
      태어나서 이렇게 비싼 죽은 처음 먹어보네.

* 바닥까지 긁어먹는 소리.......

(갑자기 열심히 죽을 먹는 아내가 안쓰러워 보였다. 만 오천 원짜리 죽 한 그릇이 아까워,
 그릇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아내... 난 몇 십만 원짜리 술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데...
 내 아내는 태어나 이렇게 비싼 죽을 처음 먹어 본단다.
 그 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나 생각이 들었다.)

여 : 여보, 할 말이 있는데.
남 : 어, 얘기해.

여 : 추석 때 있잖아. 친정부터 가면 안 될까?
남 : 왜 또 그래~ 어머니 성격 알면서~

여 : 그러게. 30년 넘게 어머니 성격 아니까, 명절 때마다 당신 집부터 갔잖아?
남 : 명절 때 시댁부터 가는 건, 당연한 거야.

여 : 당신 집은 오남매야.
      우리 집은 오빠랑 나밖에 없잖아. 엄마가 얼마나 외로워 하시는데.......
남 : 추석 끝나고 가면 되잖아.

여 : 어머니도, 당신도 웃겨. 당신!
남 : 여보.... 왜 이래. 새삼스럽게.

여 : 그럼 이렇게 해. 추석 때 당신은 당신 집 가. 난 우리 집 갈 거야.
남 : 어머니가 가만 계시겠어?

여 : 안계시면 어떡 할 건데? 나도 할 만큼 했어. 맘대로 하라 그래.
남 : 당신, 오늘 좀 이상하다.

여 :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내가 이정도 얘기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해?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노발대발하시며,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난리를 치셨다.

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니, 이번만큼은 노엽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말씀 드렸지만,

오히려 마누라 편든다며, 내게도 잔소리를 늘어 놓으셨다.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제 새언니 흉을 보면서, 무슨 며느리가 그렇게 제멋대로냐고 했다.

자기는 임신을 핑계로, 추석 전부터 우리 집에 와서 쉬고 있으면서...

제 새언니가 친정에 간 건, 그렇게 못마땅한가 보다.

 

아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이지만.. 하는 말마다 행동마다
참 얄미울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 문 탕 ~ 열고 들어오는 + 클래식 소리.....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태연히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남 :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 음악 탁 끄는 (쇼팽의 이별곡) 소리.......

여 : 음악 들으면서 책 보잖아. 왜?
남 : 제정신이야? 어머니 얼마나 화나셨는지 알면서, 명절 내내 전화 한 통화 안 해?

여 : 어머니 목소리 별로 듣고 싶지 않았어. 간만에 좋은 기분, 망칠 필요 없잖아.
남 : 뭐??

여 : 가끔 뉴스에서 주부우울증으로 투신자살하는 여자들 얘기 들으면,
      혼자서 생각했었어. 남은 가족들은 어쩌라고 저랬을까...
남 :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여 : 그런데, 나 이제 이해가 돼. 그 여자들은 남은 가족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택했을 거야.
남 : 그게 말이 돼?

여 :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처음엔 조금 슬프겠지만, 금방 잊을 거야!
남 : ..... 여보?!.....

여 : (울며) 여보.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나,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랬어.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갔을까 놀라서 나를 찾아주길 바랬어.
      침대에 혼자 누워서 당신이 헐레벌떡 나타나 주면, 뭐라고 하면서 안길까
      ... 혼자 상상 했었어. 그런데, 당신 끝내 안 나타나더라. 끝내 나 혼자 두더라.

(아내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날 나와 아내는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에 대해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가는 내내 아내는 무거운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

남 : 죽으러 가냐?
여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남 : 요즘 위암? 아무것도 아니야. 요즘은 다 고쳐.
여 : 그래. 누가 뭐래.

남 : 악성도 다 고친다구. 내 친구 차 교수 알지? 그 친구도 위암 3기였는데, 멀쩡하잖아.
      요샌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 거! 진짜 아무 것도 아니라구!!!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 큰소리를 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한 건지,

 나 자신을 안심 시키기 위한 건지... 큰 소리 치면서도 운전대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그러면서도 난 끝까지 중얼거렸다.)

남 : 암? 쳇! 그런 거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내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 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수술도 하기 어려운 상태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가고 싶은 데 있다고 하면 데려가 주고, 먹고 싶은 거 있다고 하면 먹게 해 주라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자기가 뭔데. 자기가 하나님인가. 자기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아나.
 내 아내가 내 곁에서 3개월을 살지, 3년을 살지, 30년을 살지 어떻게 알고....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한단 말인가.

 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멱살이라도 잡고,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의사의 입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여 : ...... 여보!!......

(아내 음성이 조용히 귓가에 내려 앉는다.

아내가 살포시 팔짱을 끼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
 

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다.

 지금 그녀를 보면.. 절망으로 가득한 내 얼굴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러긴 싫었다.)

여 : 여보....

남 : (무뚝뚝) 왜!

여 : ...........미안해.
남 :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내가 아까 말했지? 차 교수도 처음에 병원 갔을 때, 똑같이 말했대.
      차 교수도 3개월, 아니 2개월 산다 그랬대! 그런데 지금 봐. 멀쩡하게 다니잖아.
      그 친구가 나보다 힘도 더 세고 더 튼튼해! 의사 자식들이 하는 말,

      저거... 다 뻥이야! 사람 겁주고... 어? 겁줘서 돈 뜯어낼라고 하는 소리야! 믿지 마,
      저런 말!!

(나는 바보다. 끝까지 아내 앞에선 강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큰 소리 치고 있다. 하지만
 난 지금 너무 무섭다. 아내가 잡고 있는 내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너무너무 겁나고 무섭다.
 아내의 따뜻한 손 이 내 손을 꼭, 더 꼭 잡아준다.)

* 엘리베이터 띵~! 올라가는 소리.......

(집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누가 암에 걸렸다,
 누구 부인이 죽었다.. 이런 얘기 많이 듣는 나이가 됐지만, 그런 일이 내게 닥칠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 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 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 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처음으로 우리 집으로 장만한 이 아파트에는 아내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여 : 여보, 우리 이사 갈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내가 말했다.)
여 : 여기 우리 둘이 살기에는 너무 넓잖아?

남 : 됐어. 난 여기가 좋아.
여 : 아니야. 너무 낡았어. 이 집 팔고 조금 작은 평수, 새집으로 이사 가면 좋잖아.

남 : 됐다고 하잖아.
여 : 이 집이 당신 괴롭힐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 집... 정말 꼴도 보기 싫다.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갑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백번도 넘게 해온

 소리들을 해대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 대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 담배 불 켜는 소리.......

여 : 또... 또 담배....
남 : 또... 잔소리.... 그러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여 :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남 : 코스모스?

여 :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 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여 :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남 : 아니야. 가자.

* 바람 부는 + 갈대숲 일렁이는 소리.......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 :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남 : 뭔데?

여 :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남 : 뭐?

여 : 내년 4월에 탈거야. 2천만원 짜린데,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남 : 당신 정말...

여 :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 문 여는 소리.......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집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침대와 소파 식탁 정도만이, 모든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 오도카니 남아 있었다.)

남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 : 내가.. 오빠한테 부탁해서 이사 좀 해달라 그랬어.

남 : 뭐?
여 : 오빠가 동네 가르쳐 줄 거야. 여보, 나 떠나고 나면 거기 가서 살아.

남 : 당신 정말 왜 이래!! 그럴 거면, 당신이랑 같이 가.
여 : 아니야. 난 새집 안 들어 갈래. 거기선 당신이 새 출발해야지.

남 : 당신은, 내가 정말 당신 잊길 바래?
여 : ......솔직히 말하면 아닌데... 그렇다고, 당신이 나 떠나고 나서, 
      청승 떨면서 사는 건, 더 싫어.

(텅 비어 있는 집의 한 구석에, 우리 부부가 앉아 있다. 베란다 사이로 스며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아내가 떠나고 난 내 삶은, 지금 이 빈집처럼 스산할 거라는 걸 안다.)

* 풀벌레 소리.......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 :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로포즈 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남 : 내가 뭐라 그랬는데....

여 :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남 : 그랬나..

여 :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남 : 그랬나...

여 :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남 : ..... 자!.....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 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남 :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여 : .................

남 : 여보.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여 : .............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어 본다.)

남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 그렇게, 난, 아내를 보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