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小花 2021.03.24 09:35 조회 수 : 285

 

4_1%A4%A7%A4%B5_144.jpg

 

 

아침부터 촉촉하게 봄비가 내린다.

세상엔 감사할 일이 많고 많지만 때 맞춰 내려주는 봄비보다 더 감사한 일은 없지 싶다.

봄비가 대지를 적신 뒤 움트는 초록의 생명은 그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이 비 그치고 나면 파란 새싹들이 더 많이 고개를 내밀고 꽃나무들이 다투어 꽃을 피워낼 것이다.

비 때문에 쌀쌀해서 하루 종일 어깨를 움츠리지만 봄이 한 걸음 더 빨리 오리란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올해는 봄이 조금 빨리 오는 편이다.

요즘 수목원엔 예년보다 조금 이르게 산수유와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희귀식물원의 히어리도 연노랑 수줍은 미소를 살며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너무나 정겨운 이름이지만 사실 내게도 히어리라는 꽃이름이 희한하고 낯설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히어리? 외국 꽃도 아닌데 무슨 이름이 그래?

 

히어리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종이다.

이른 봄 잎보다 먼저 나뭇가지 가득 매달리는 노란색 꽃송이가 아름다워서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1924년 당시 수원농림학교 교수였던 '우에키 호미키'에 의해 학명이 부여되었고 향명은 '송광납판화'다.

처음 발견한 곳이 송광사 부근이고 꽃잎이 밀납처럼 반투명하다 해서 붙여졌다는데

내가 보기엔 꽃잎보다 꽃받침이 밀납처럼 투명한 느낌이다.

히어리라는 독특하고 예쁜 이름은 1966년 이창복 박사가 붙였다

이름이 붙여진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자료를 토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희다라는 뜻의 '허여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히어리'와 '허여리'의 발음이 비슷하긴 하지만 어딘지 억지스럽다.

 

둘째는 '해여리'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해를 연다는 뜻인 것 같다.

한 해의 시작은 1월 1일이지만

태양의 위치에 따라 계절을 구분한 24절기에서는 입춘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본다.

때문에 입춘 전날을 해넘이라고 했다.

입춘인 해넘이가 지나면서 가장 먼처 피기 시작한 꽃이니 해를 여는 꽃이라는 뜻으로 해여리라 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거리를 뜻하는 '시오리'라고 부르다가 '히어리'가 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그보다는 히어리라 명명한 이창복 교수가 송광사 부근 사람들이 구전으로 부르던 노래에

'뒷산 히어리~'라는 가사를 듣고 명명했다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히어리의 학명(Corylopsis coreana Uyeki)에는 일본인 학자 우에키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일제시대에 조선의 자생 식물을 찾아내고 연구하면서 가장 많은 학명을 붙인 사람은 나카이 다케노신이라는 식물학자다.

철저하게 일본의 입장에서 조선의 식물을 찾아내고 연구했던 나카이는

이 땅의 자생식물 학명을 알게 될 때 마다 머리뚜껑 열리게 하는 인물이다.

같은 일본인 식물학자이지만 너무나 다른 길을 걸었던 나카이 다케노신과 우에키 호미키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정리를 할 생각이다.

 

간략하게 요점만 정리해야지 하면서 시작한 글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다.

그래도 개인적 욕심으로 더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다.

나는 활짝 핀 히어리를 볼 때 마다 가지에 수없이 많은 노란 리본이 달려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1973년 발표된 토니 올랜도 & 던(Tony Orlando & Dawn)의 히트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3년간 형무소 생활을 하던 남자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연인에게 쓴 편지에

나를 용서한다면 마을 어귀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 달라는 내용인데

경쾌한 리듬 때문에 절로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 부르게 되는 명곡이다.

또 하나 가슴 아픈 기억 세월호의 아이들, 엄마된 입장으로 생각할 때 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제발 살아 돌아오라는, 언제든 기다리고 있겠다는 노란 리본을 우리는 가슴에 달았다.

죽은 아이들은 말이 없는데 살아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계산 혹은 정략적 유불리를 따지다 보니

어쩌다 노란 리본만 봐도 진저리가 쳐진다는 사람들까지 생겨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내 마음 속 노란 리본은 언제나 꽃다운 나이에 차가운 바닷물 속에 수장된

아깝고 안타깝고 불쌍한 내 새끼들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눈곱만큼도 변질되지 않았다.